2012/07/02

나는 입에 털어넘기는 술이 미웠다.

남녀를 막론하고 술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애처로운 녀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 독자에게도 술은 애증의 대상입니다. 술을 잘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의아니게 과음을 하게 되는 날도 많았고 그로 인해 쓰라린 기억도 많았죠. 때때로 취기를 빌어 세상에 해내지 못할 것이 없다는 기분 좋은 호기도 부려보지만 다음 날 취기로 인해 힘든 몸을 이끌고 '내가 어제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감을 맛보기도 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유독 애주가셨던 할아버지, 친가 어른들과 아버지까지 애주가셔서 술이 애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게 애증의 대상이었던 이런 술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 달콤하게 풀어낸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페이지원의 <음주사유가>였죠.

"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다"
"음주에 대해 생각하다"
"술을 마시는 까닭"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술에 대해서 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만 할 뿐 그 의미까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술에 대한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특별함이죠. <음주사유>는 개인의 숨겨진 이야기보다 술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저에게는 그 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 왔습니다. 술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는 저 조차도 <음주사유>를 보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술..술..술!!

이제 술에 대해서 작은 여행을 떠나볼때입니다.

1부 끊어진 필름

술을 먹을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래도 몸을 갸눌 수 있을때까지만 먹지만 때론 휘청거리며 걷고 다음날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흔히 이렇게 말하지요.

"필름 끊겼다"

알코올이 어떤 반응으로 뇌가 기록하는 영상을 끊어냈던지 간에 우리는 술이 주는 즐거움에 정신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책에는 저자가 언제 먹었는지 모르지만  "가장 맛있는 콩나물국밥집" 이야기, 술이 모든 시름을 내려주는 신비의 묘약이라는 이야기와 술 이야기로 각색한 "나폴레옹 뎐"의 이야기는 "나폴레옹"이 진정한(?) 애주가 였음을 실감케 합니다.

술을 언제 마시고 왜 마시는가에 집중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술로부터 내 몸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가가 만들어 낸 <내 몸 사용에 대한 권리합의서>는 술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주가들에게 바치는 신개념 합의서입니다. 독자가 애주가라면 바로 한 장 똑같이 서서 액자로 만들어보는것은 어떨까요?

2부 누구의 추억

술은 사람이 마시는 거지만 때론 거나하게 취해가지고는 술이 사람을 먼저 먹어버리고 술이 술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통틀어 우린 이렇게 부르곤 하지요.

"개 됐다"

어찌보면 이 단어가 가지는 속된 의미처럼 술이 술을 먹기 시작하면 사람은 마음 속 깊이 담아뒀던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온 몸을 휘청휘청 하며 걷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 필연적으로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될 행동들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요.

우리는 이 모든 행동을 달리 일컫어 "주사"라고 합니다. 아마 술을 마셨었거나 지금도 술을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사는 정말이지 끊어진 필름에 나타나는 1차 후유증일겁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도 주사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키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도 귀엽게 용납해줄 수 있는 주사가 있는 반면 아닌 주사도 있습니다. 이런 주사를 보이는 경우는 그저 머리를 콱 내다박을수도 없고 참 난감합니다.

그런데 주사가 1차 후유증이라면 2차 후유증은 무엇일까요? 2차 후유증은 바로 물건 분실입니다. 개인적으론 저는 고가의 만년필을 잃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렸던 만년필 모두를 찾으면 좋겠지만 그런 날이 올 것 같진 않네요.

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두보와 이태백의 토론과 사자성어 6개를 삽화와 함께 즐겁게 풀어내는 저자는 술의 미학을 미국 뉴욕시에서의 이야기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비유해서 풀어냅니다.

그런데 술에 왠 뉴욕이냐고요? 뉴욕의 고층빌딩에서 사방이 유리이고 중간에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며 마티니 한잔을 생각해보세요. 술이 가지는 미학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3부 잃어버린 아우라

술은 혼자서 마시는 술이 외로움과 고독함을 안겨준다면, 여럿이 마시는 술은 즐거움을 줍니다. 연유가 어찌되었든 술자리는 결국 행복한 겁니다.

그 옛날 조선시대의 대신이 왕명에 의거해서 유배를 가거나 했을때 그 분들이 마셨던 술만 해도 강 하나는 족히 넘었을 겁니다.

만약, 봉이 김선달이었다면 애주가를 위해서 대동강 물을 술로 둔갑해서 팔았겠지요?

저자는 사랑도 술로 시작한다고 주장하면서 새벽 2시의 카페인 파라다이스를 통해 술에 대해 단상을 논합니다.

술에 대한 기억만큼이나 저자가 타고 다녔던 오토바이카의 결론은 조금 슬프면서도 웃깁니다. 그런데 오토바이카 라고 해서 오토바이를 차로 개조한 것은 아니랍니다.

2부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사자성어 6개를 술과 함께 이야기 합니다. 술에 심하게 사랑하는 저자의 이야기. 잃어버린 기억들과 함께 느긋하게 즐겨보셔도 좋겠습니다.

4부 타인의 취향

술을 한 잔, 두 잔 하면서 밤 하늘의 별이 술잔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술과 함께 "캬아~ 술은 좋구나"

저자는 기형도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애주가 답게 "니노미야 도모코"의 음주가무연구소의 분점을 꿈꾸기도 합니다.

술을 먹으면서 잃어버렸던 기억들의 이야기와 중간중간 멍은하님의 만화 센스가 돋보이는 "그 아부지에 그 딸"은 무척 재미있는 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술이 주는 즐거운의 쾌락이 어디인지 그 종착역을 알 수 없지만 술 한잔 기울이며 우리네 인생 참 애달프다 고달프다라고 말하며 술의 힘을 빌리는 게 좋지만은 않지만요.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를 통해 타인의 취향을 엿보기도 하지만 결국 술 만이 인생의 쓰디 쓴 현실을 도피처로 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믿거나 말거나.. 멍은하님은 미도리와 아직도 "야. 마셔마셔~", 박기원님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아 ~ 오늘도 한잔 걸칠까?"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노래하는 것만큼이나 술에 대해 다룬 책을 리뷰 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술을 처음 먹기 시작했던 10여년 전의 독자나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저자가 술을 먹었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건 술의 종류가 많아졌다는 정도일까요?

본 도서를 읽고 있던 시간엔 어렸을적 시골의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툇마루에 앉아서 동네 어른들이 취해보세~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기 보다는 그저 한 남녀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트에 들러 술한잔 하는것이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개개인 마다 다르겠습니다. <음주사유>는 개인의 숨겨진 이야기보다 술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던 책입니다. 저 조차도 <음주사유>를 보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술에 대한 생각보단 음주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던 계기였지요.

이 책은  마을 어귀에서 술을 한가로이 마시는 어른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아니지만 음주의 목적과 음주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만큼 술을 즐기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한 번즘은 읽어봄직한 재미 가득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또 이 고단한 현실 속에서 지금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늘도 술에 취해서 "홍냐아~" 하고 있는 분에게 슬며시 건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술 대신 한권의 책에 거나하게 취해보시는 건 어떨지요?

참! 그래도 술은 자기 몸을 갸눌 수 있을때까지만 마셔야 하는 거 아시죠? ^^ 

댓글 없음: